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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노잼' 도시에 머물게 되었냐면요… - 한겨레

[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대전 머물다가게
대전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전에서 보냈다. 대전에 반드시 오래도록 머물겠다는 대단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지역문화 기획 관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대전 안에서 네트워크가 쌓였다. 10년 전에도 ‘문화예술의 불모지’라는 수식어가 붙던 대전은 이제 ‘노잼 도시’라는 새로운 버전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노잼 타파를 위해 근 10년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지역문화 현장에서 지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조금씩 갈증이 생겨났다. 어떤 동네에서 무슨 활동을 하든지 그곳에 머무는 기간은 1년 혹은 길어야 2~3년에 그쳤다. 사업이 끝나면 정든 마을과 주민들을 찾아갈 명분이 사라졌다.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면 꼭 내가 사는 동네에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니다가 170일 동안 긴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더욱 커졌다. 여행을 마치고 가까운 동네에 살던 전 직장 동료와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마음 맞는 청년들과 함께 무언가를 시작해보자 한 것이 머물다가게의 시작이 되었다. 2019년 5월, 나는 ‘다니그라피’라는 1인 출판사를, 동료는 ‘진DoL’이라는 마을 여행사를 창업했고, 각자의 집에서 중간에 있는 대동이라는 마을에 공간을 얻었다.
대동은 대동하늘공원과 대동벽화마을 아래에 있어 종종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동네였다.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게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는데, 독립출판 경험이 있으니 그나마 제일 잘 팔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책이었다. 독립출판 작은 축제 때 함께한 대전 지역 창작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게를 조금씩 채워갔다. 자연스레 대전의 창작자와 작품들이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공모전을 통해 ‘대전 굿즈 아이디어’ 사업을 진행하면서 머물다가게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로컬숍으로 조금씩 거듭났다. 대전의 여러 창작자들에게 입고 요청이 먼저 올 때마다 신기했고, 대전에 이렇게 많은 창작자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뿌듯했다. 때로는 노잼 도시의 오명을 벗겨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명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걸어갈 수 있는 내 집 앞 책방, 내 집 앞 문화공간이 있어 동네 사람으로서 가장 기쁘다.
요즘엔 코로나19로 힘들지 않냐는 걱정과 위로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동네책방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것을 모르고 창업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네책방다운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2년을 버텨오고 3년 차가 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조심스레 지역 작가와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다시 열어보려 한다. 부디 대전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곳에 가득가득 머물다 가기를 바라면서. 대전/글·사진 임다은 머물다가게 바깥주인
머물다가게 대전광역시 동구 대동로 44, 1층 instagram.com/meomulda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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