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등의 경계로부터 20㎞ 이내의 범위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자."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김해을)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 개정안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영세 소상인을 보호하려면 현행 전통시장 반경 1㎞ 제한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이 발의가 현실화하면 앞으로 전국엔 대형마트나 쇼핑몰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없다.
[거꾸로 가는 유통규제]
전국에서 점포 신설 원천 봉쇄
이미 강한 규제, 초강력 규제로 재탄생
유산법 개정안은 이중 이른바 '더 센 놈'이다. 유통기업들이 초긴장 상태인 이유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유산법 개정안에 대해 “1호 민생공약으로 통과시키겠다”고 최근 공언했기 때문이다. 기존 유산법 규제 존속기간은 오는 11월 23일까지다. 규제 효력이 사라지기 전 새로운 룰을 정해야 하는 만큼, 21대 국회에선 유산법 개정안이 무더기로 제출됐다. 23일 현재까지 12개 안이 제출, 심사 중이다. 제출 법안 중엔 아예 사업을 하지 말라는 수준의 요구도 꽤 된다. 보존구역을 전통시장 반경 20㎞로 확대하자는 김정호 의원 안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서울 등 각 도시에서 대규모점포 설립은 까다롭다. 롯데쇼핑의 서울 상암동 쇼핑몰은 부지 2만644㎡(약 6245평)를 마련해 놓고도 토지 용도 변경 승인을 받지 못한 채 7년째 표류 중이다. 인근 전통시장 17곳 중 1곳과 상생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해결될지 기약이 없다.
2016년 용지를 매입한 스타필드 창원(부지 3만4000㎡)은 지역 상인의 극심한 반대에 3년간 표류하다가 지난해 시민 200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에서 6개월 논의 끝에 나온 찬성 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추진을 이어가게 됐다.
조춘한 경기과학대 스마트경영과 교수는 "법안 취지와는 달리 이미 쇼핑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수도권은 살리고 미흡한 지방은 죽이는 규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나주혁신도시 실패 원인을 보면 쇼핑 인프라 등이 없기 때문"이라며 "광주나 청주 등 지방 소비자가 주말에 수도권 아웃렛, 복합쇼핑몰로 몰리면서 지역 상권이 죽는 현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유통산업은 신규 점포를 내고 성장하는 업태인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성장도 멈추라는 것”이라며 “온라인 유통으로 인한 시장 격변과 코로나 19까지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일자리 증발
의무휴업을 확대해도 고용은 감소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 복합쇼핑몰이 월 2회 휴업하면 6161여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백화점, 쇼핑센터로만 의무휴업을 확대해도 5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봤다. 일부 개정안에 들어 있는 면세점, 프랜차이즈형 체인까지 더하면 사라지는 일자리는 급증할 전망이다.
규제 기대 효과와 다른 ‘부작용’
면세점이 거기서 왜 나와
이동주 의원 안은 면세점 외에도 어지간한 오프라인 사업자는 모두 의무 휴업과 영업제한 대상으로 묶었다. 복합쇼핑몰과 백화점은 물론, 아웃렛과 대기업으로 상품을 공급받는 상품공급점, 대규모점포나 준대규모점포에 준하는 기업이 직영하는 직영점형 체인사업, 프랜차이즈형 체인사업이 월 2회 공휴일 문을 닫아야 한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서울 중구성동구갑)은 복합쇼핑몰의 월 2회 쉬는 날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정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을 하면 매출액은 4851억원이 감소한다. 의무휴업 대상을 백화점, 쇼핑센터, 전문점까지 넓히면 2조5221억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통 패러다임 변화 반영 못 해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합쇼핑몰은 유통매장이라기보다는 놀이ㆍ관광시설인데 이를 휴일에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규제는 오프라인 유통의 경쟁력을 약화해 관련 일자리를 없애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계기로 완전히 e커머스(전자상거래)가 운전대에 앉은 소매 산업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한국유통학회가 지난 7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소비자는 인근 수퍼마켓(23.66%)에서 장을 보는 경우가 가장 많고, 전통시장(5.81%)을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휴업 규제가 적용되는 일요일 대형마트 이용자의 카드 금액 감소율이 평일에 비해 컸다. 반면 온라인 쇼핑은 지속해서 일요일 이용 금액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의무 휴업의 혜택은 온라인으로 돌아간다고 분석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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