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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한·일 문화통신사 부활을 꿈꾼다 - 매일경제


한일관계가 빙하기다. 치욕의 망국역사는 와신상담 심정으로 역사가에게 맡기고 문화의 힘, 스포츠 열기로 빙하를 녹여 우정의 강물이 흐르는 한일 신시대를 열어야 한다.

한일 간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기획한 한국문화통신사가 1992년 일본에 가고 일본문화통신사가 1994년 한국에 왔다. 문화정책국장이던 필자는 일본 관련 부처와 동 사업 추진을 협의해 국제교류기금과 자치성교류기금의 후원을 얻었다. 일본은 처음엔 통신사라는 명칭에 마뜩해하지 않았으나 양국 간 문화교류 증진 필요성에 공감했다. 한국문화통신사는 한일문화포럼, 가야문화전, 한국민속전, 심청전 공연으로 구성됐다. 문화부는 1992년 일본 국민가요 엔카의 국내방송·음반을 처음 허용했다.

한일문화포럼은 아사히신문 주최로 아사히홀에서 이어령 장관과 일본석학 우메하라 다케시의 기조연설로 진행됐다. 한일문화 동질성(同質性)은 유불선 문화, 우랄알타이어족, 한자문화권, 유교적 위계질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일문화 이질성(異質性)은 한국인의 개인주의와 일본인의 집단주의 성향, 한국인의 문(文)과 일본인의 무(武) 숭상, 한국인의 솔직하고 풍부한 감정표현과 일본인의 본심과 부정적 표현 억제력이 비교된다. 똑같은 야금술을 가지고 한국은 세계에 없는 에밀레 신종과 금속활자를 만들고 일본은 무적의 일본도를 만들었다. 이 장관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과 죽이는 기술의 차이라고 비유하여 웃음과 박수로 강당을 제압했다.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가야문화전에 일본 천황부부가 참관했다. 역대 천황 중 한국문물전시 첫 참관이다. 교토, 후쿠오카에서도 열린 전시에 연 20여만명이 관람했다. 청동거울, 청동검, 마구, 간토기, 유리보석과 함께 가야시대 갑옷과 일본에서 출토된 갑옷이 나란히 전시되었다. 한일 갑옷은 크기, 형태, 재질까지 똑같아 긴밀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쿄 아자부미술관에서 열린 허동화 컬렉션 '한국 색(色)과 형(型)'전 개막식에 일본 천황의 차남 왕자비가 참석했다. 6개층 전시실은 고려와 조선의 자수와 조각보, 복식 등 규방유물로 채우고 꽃문양이 새겨진 100여 개 다듬잇돌이 놓인 지하전시실에는 서울올림픽 폐막식의 다듬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자비는 수행원들을 내보내고 30분간 명상에 빠졌다. 그 후 수십 년간 일본 황실과 문화소통을 하던 허동화 관장은 세상을 떠나며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품을 기증했다. 국립창극단의 심청전 창극공연이 도쿄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심청역 안숙선 명창의 영혼을 울리는 판소리에 예술인, 대신, 국회의원 등 일본 관객이 큰 박수를 보냈다.

이에 화답해 1994년 일본문화통신사 극단 사계(四季)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뮤지컬공연이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화려한 무대와 우아한 춤 노래에 매료됐다. 현대일본문화강연이 일본문화원에서 열리고 일본전통공예전과 현대일본디자인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됐다. 이 전시회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이 불법 난입해 장식장과 공예작품 수십 점을 깨뜨리는 반달리즘이 일어났다. 마음과 마음이 오고가는 한일문화통신사의 정례화로 우정과 신뢰를 쌓으려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문화통신사 교류도 중단됐다. 동 사업을 추진했던 일본 당국자와 예술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감정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편협한 한일 정치인에게 누가 경종을 울릴 것인가? 한일문화통신사 교류를 부활해 양 국민의 이해증진과 신의회복의 장을 열자. 한여름 밤에 비올리스트 천황과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협연하는 꿈을 꾼다.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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