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일보]청주문화재단의 한 20대 중반 직원과의 대화.
“서울 가끔 놀러 간댔지요? 어디를 가요?”
“연남동에 자주 갑니다.”
“홍대 앞이 아닌 연남동을?”
“골목길에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가 많아서요.”
문득 ‘마용성’이 떠올랐다. 수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등 서울의 강북 3개 구를 칭하는 말이면서, 강남에 견주어 강북의 경제·문화 활성화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마포구는 언제부턴가 서교동 등 홍대 일원을 벗어나 연희동, 연남동, 합정동, 망원동까지 사람들로 꽤 붐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마용성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다리만 건너면 강남이기 때문에서라고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재단 직원의 말에 답이 있다. 마용성 현상의 한 본질은 원도심 문화다.
재단의 또 다른 20대 후반 직원과의 대화.
“어디를 즐겨 가나요?”
“힙지로에요.”
“??”
“요즘 을지로를 힙지로(hip-)라고 해요.”
을지로에 가면 옛날식 다방, 헌책방, 거리의 술집 등등 레트로(retro)가 있고요 ... 젊은층은 길 한가운데 삼삼오오 길게 늘어앉아, 또 중년 세대들은 양쪽 길가로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요 ...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들이 정겨워요 ... 마스크 위로 잡히는 그의 눈주름에는 즐거움이 생생하다.
그럼, 그 즐거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젊은 청춘남녀들이 서로 몸이 닿을 듯 가까이 앉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즉석만남이 재미라고 하면서도 그는, 익숙한 듯 낯선 호기심으로 자신을 이끄는 복고풍의 문화가 더 큰 이유라고 했다. 을지로 아니 힙지로 현상의 본질 또한 앞 세대의 경험과 기억, 즉 시간과 함께 무늬진 문화다.
코로나19는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다. 이미 지난 세기 후반부터 우리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온 탈중심과 분산은 번개처럼 몰아친 코로나19 속에서 눈 깜박할 새에 더 확연히 드러난 것일 뿐, 그 방향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중앙에서 벗어나 있던 지역,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변방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같은 이태원이라도 경리단길은 망했어요. 해방촌은 살았고요,”
“홍대 앞은 망했지만, 연희·연남·망원은 다 떴다니까요.”
이렇게 생활 주거지가 배후인 곳 말고 오랜 세월 인파로 북적이던 전통적인 관광지, 유명지, 대학가는 하도 타격이 심해, 코로나19 이후에도 완전한 회복이 될까 싶다. 이른바 슬세권은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해가는 곳이 드물지 않고, 꾸준한 활황을 보여온 데도 제법 있다. SNS 위치기반 서비스는 작은 동네, 후미진 뒷골목을 굳이 발품 팔아 찾게 하는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만든다.
서울의 동네 상권, 골목 상권만큼은 강북이 강남을 압도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은 대개 다 부수고 새로 세우는 재건축과 재개발뿐이었지 않은가. 우리 삶의 이야기가 사라졌으니 경험과 기억을 찾을 수 없다. 레트로는 더욱 없다.
청주의 원도심 문화는 어떤가? 차고 넘친다! 청주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지원 실적을 보라. 한강 이남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시쳇말로 애정하는 도시가 청주다. 70년대, 80년대 골목길과 거리, 그 정취가 있어서다. 원도심 문화가 살아 있어서다. 무심천 동쪽이야말로 원도심 문화의 보고다.
이런 의미에서 청주시 공간환경전략계획이 밝힌, 석교동 육거리부터 안덕벌 칠거리까지의 1차 중심추진권역 설정은 당연하다. 이 권역이 바로 청주를 대표하는 원도심이다. 오창 쪽에서 시내 복판으로 진입하는 관문 성격의 밤고개를 공예·공방의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 또한 적절하다. 도시의 경험과 기억, 그 삶의 시간을 이어가는 공간이 원도심이다.
원도심 해법의 상수는 언제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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