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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면] 귀신 이야기와 서브컬처 - 매일경제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괴력난신이란 괴이(怪異), 용력(勇力), 패란(悖亂), 귀신(鬼神) 등 이성적·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죽은 자의 세계도 여기에 속한다.

공자는 "산 자의 일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 뒤를 논하겠는가"라며 제자를 가르치곤 했다. 유가의 현실주의는 늘 "선생은 말씀하시지 않았다(子不語)"를 근거로 삼았으며, 유교문화권에서 사후 세계에 대한 갈망을 자생적 대중종교로 몰아내는 민간의 저류를 가로막아온 문화적 기제로 작용했다.

그런데 후대에 공자의 이 정언명령을 통쾌하게 위배한 책이 있었으니 중국 청대의 문인 원매(袁枚)가 펴낸 '자불어(子不語)'다. 일종의 패러디인 책 제목 자체가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공자가 말하지 않았으니 내가 말하겠다'고 하는 듯하다.

원매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1755년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에 저택을 구입해 수원(隨園)이라 이름하고 자유분방한 문필 활동을 펼쳤는데, 당시의 복고주의적 사조에 반대해 시는 성정이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노래해야 한다는 성령설을 주창하는가 하면 쾌락주의적 미식가로서 음식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항간에 떠도는 귀신 이야기를 두루 채집해 24권으로 방대하게 엮어낸 문언단편집이 바로 '자불어'다.

이 책을 보면 청대의 다채로운 민간 정서와 풍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말이 귀신 이야기이지 실은 사람 사이의 복잡하게 얽힌 은원관계를 비롯해 당시의 먹고사는 문제, 시장 환경, 가족관계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승과 이승의 교통이 지극히 자유로워 세계가 두 배로 넓어진 느낌도 든다.

책 전체에서 유가적 발상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다음과 같이 비꼬는 때만 잠깐씩 나온다. 가령 논어 '옹야' 편은 "어진 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뜻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뜻을 이루게 해준다"고 했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라는 이 말을 원매는 다음과 같이 비튼다. "우리처럼 귀신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물에 빠져 죽으면 다른 이도 물에 빠져 죽길 바랍니다. 자신이 목매달아 죽으면 다른 이도 들보에 목매달아 죽길 바라는 법입니다. 이것 역시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물론 유교가 사회의 질서 유지와 유기적 운영에 미친 크나큰 역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불어'를 출판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청나라 지식사회의 이미지는 고증주의와 금석문이다. 진한(秦漢) 이전의 고문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였으며 이는 번다해진 송명이학에 반발해 고전의 원의에 충실하자는 뜻이었다. 반면 지나치게 원전주의로 빠지면 경직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지식사회의 동정과는 정반대에서 현실을 재료로 삼아 자유로운 상상을 펼친 흐름이 존재했다. 이른바 청대 출판의 서브컬처다. 앞서 말한 원매를 비롯해 '한정우기(閑情偶寄)'를 쓴 이어(李魚)와 같은 작가는 희곡 이론가이면서 극단 경영자였고 책의 기획과 출판, 판매를 총괄하는 전문 출판인이기도 했다.

이런 서브컬처 주동자들에 의해 귀신, 연애, 무협을 비롯해 식치, 원예, 화장법 등 실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책이 출판돼 상업출판이 활성화된 것이 청대 출판의 이면이다.

요즘은 귀신 이야기가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우리 출판은 너무 진지하기만 한 건 아닐까. 재미난 이야기는 전부 웹으로 몰려가고 그곳 시장 규모가 종이책시장을 능가해버린 현실이 단순히 온·오프라인 역전 현상이기만 한 걸까. 다양한 서브컬처가 각개 약진하는 중에 본류를 밀어올리는 게 오히려 출판의 역동성이 아닐까. '사기열전'에서 말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아 그리 높아질 수 있었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 하나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그리 커질 수 있었다고. '자불어'라는 청나라 귀신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시대의 서브컬처가 재미라는 귀한 가치에 다시 주목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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