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한국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이어령(88) 전 문화부 장관이 음악을 선택했다. 최근 2년간 외부 행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그는 다음 달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재개관을 기념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작품 '천년의 노래, 리버스' 작사에 참여한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 내 집무실에서 만난 이 전 장관은 "그간 워낙 여러 가지 하는 일이 많아서 음악보단 디자인과 춤 등에 더 신경을 쓴 게 사실"이라며 "컬래버레이션 형태이지만 본격적인 음악 작품을 만든 건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취임 직후 열린 신년 음악회에서 열 살이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한국 이름 장영주)의 국내 데뷔 무대를 마련했고, 문학사상 주간 시절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대본 전체를 실었고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제에 참석해 윤이상의 연주를 듣는 등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과거 저서 등 이 전 장관의 글을 토대로 만든 가사에 곡을 붙여 이번에 무대에 올린다. 그는 건강상 이유 등으로 처음엔 작사 의뢰를 거절했지만, 다섯 번에 걸친 요청 끝에 자문 등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기로 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전 장관은 "엄격한 의미에선 이 작품의 손님이자 아웃사이더이지, 인사이더는 아니다"라며 "어쨌든 발을 하나 들여놓긴 해서 주관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갖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특수한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국인의 사상적 원형으로 언급했던 신시(神市), 삶의 자세로 강조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문화부 장관 시절 유엔 가입을 경축하기 위해 파견한 문화사절단이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노래여 천년의 노래여' 등이 5악장으로 구성된 음악으로 재탄생한다.



이 전 장관은 "새벽 1시부터 4시까지가 가장 아프다. 5시쯤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오면 좀 괜찮아져 그 시간을 기다리곤 한다"면서도 "새벽에 우는 닭 같지 않나"고 말하며 위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요즘 일상에서 느끼는 생각들을 긴 글 대신 틈틈이 짧은 시와 함께 배경 그림을 덧붙여 '눈물 한 방울'이란 주제로 글을 쓴다. 다만 자신이 보려고 쓰는 거라 생전에 책으로 낼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나는 음악 작품으로 보면 전체 4악장 가운데 마지막 악장 끝부분, 피날레를 하는 입장"이라며 "오케스트라가 '짠'하고 연주를 끝냈을 때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암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그는 "옛날에 천연두에 걸리면 '마마'라고 부르며 손님으로 모시지 않았나"라며 "항암 치료받고, 우울증 걸리고, 눈물 흘리고, 소리를 질러봤자 족쇄는 더 강하게 조여올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죽음의 반대말은 생(生)이기 때문에 항상 생과 사(死)가 같이 있는 것"이라며 "내가 살아있다는 건 죽어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은 어디까지나 삶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다가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딸의 9주기를 맞아 올해 3월 펴낸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개정판 서문에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보여주었다"고 적었다.
"9년 전 딸의 죽음 직후 우울하고 침울했는데 이번에 딸 생각을 하면서 개정판을 내려다보니 딸이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온 것과 같아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네 글을 읽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넌 죽은 게 아니라 끝없이 살아있는 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맞는 것이다, 이런 생각인 거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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