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동자로서 그가 바란 것은 하나였다. 이를 위해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가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희망의 불꽃이 된 전태일 열사의 삶은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가 꿈꿨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2021년 지금,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 앞에 되살아났다.
지난 22일 전태일 열사에 관한 첫 애니메이션이자, 청년 전태일을 그려낸 홍준표 감독을 만났다. 홍 감독은 세대를 넘어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쩌면 그 시작점이 '태일이'일지 모른다. 홍 감독에게서 '태일이'(12월 1일 개봉)의 시작과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어봤다.
홍준표 감독(이하 홍준표):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주로 단편 작업을 해왔는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의 장점들을 명필름에서 캐치한 것 같다. 명필름에서 전태일 애니메이션이 제작될 예정이라며 연락해 왔다. 내가 보기에 전태일 열사의 다음 세대 창작자인 내가 현재 세대에게 지금의 정서로 해석해 전달하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표현 방식으로 열사라는 느낌보다 나나 관객 주변에 있는 청년의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태일이'를 하기 전에 전태일 열사에 관해 잘 알고 있었나?
홍준표: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나도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그러니까 전태일 열사가 어떤 목소리를 냈고,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개인적인 태일이의 모습은 잘 몰랐다. 그래서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던 건 전태일이라는 청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보는 사람이 열사의 느낌보다는 진짜 친구,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알아보고자 했다.
▷ 그렇다면 청년 전태일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
홍준표: 태일이를 사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에게 태일이가 어떻게 불렸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관계들을 맺고 있는 태일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소선 여사의 아들 태일이, 형이나 오빠의 모습도 있을 수 있고, 동료들에게는 친구고, 어린 여공에게는 오빠이자 재단사일 수 있다. 이처럼 열사의 모습을 배제하고 아들, 오빠 등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속 이미지도 그렇고 흔히 우리가 아는 전태일 열사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태일이' 속 캐릭터 작화를 어떤 식으로 가져갈지도 고민이었겠다.
홍준표: 처음에는 전태일 열사의 모습이랑 비슷하게 그리려고 해봤다. 그런데 우리가 전태일 열사를 영화를 통해 목격하고자 극장에 가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평범한 청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그렇다 보니 캐릭터를 실제 전태일 열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디자인했다. 그 시대에도, 지금 시대에도 존재하는, 그 시대 청년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공감을 끌어내면서 동시에 도드라지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냈다.
▷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캐릭터 작화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의 전반적인 색감이 따뜻한 느낌을 풍긴다. 영화의 색감은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가려 했는지 궁금하다.
홍준표: 당시 주변 사진이나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녹지대가 없다. 대부분 회색의 모습이거나 색이 많이 없는 건물로 이뤄져 있다 보니 삭막했다. 물론 당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굉장히 힘들게 일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끼리 모였을 때는 때때로 행복하고 즐거운 정서도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걸 색감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빛이나 빛이 산란하는 색감들을 이용하게 됐다. 특히 공장 안에서의 대비를 빛과 조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홍준표: 인물들뿐 아니라 공간도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봤다. 캐릭터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공간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료 조사도 진짜 많이 했고, 실제로 그 공간이 어떻게 느껴질지 가늠하기 위해 당시 공간에 직접 들어가 봐야 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 있는 세트(체험관)도 경험해보고, 그걸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은 가볍게라도 세트를 지은 후 그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해보는 가이드 촬영도 진행했다. 관객이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꼈으면 했기에 스케일이나 감정도 진짜 같이 전달해야 한다고 봤다. 모든 공간은 3D로 빌드했고, 실제 촬영해보기도 하는 등 진짜 같은 느낌을 주려 했다.
▷ 연출하면서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홍준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분신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분신으로 이어지는 시위 장면도 마찬가지고. 마지막 시위 장면에서 태일이가 그 공간에 없다. 태일이를 제외한 동료들이 시위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내는 데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분신 장면은 처음부터 고민이었고, 제일 마지막에 연출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한 장면이다.
▷ '태일이'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리고,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외적으로 감독이 '태일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무엇인가?
홍준표: 애니메이션은 우선 폭넓은 관객층이 쉽게 발걸음 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장르적 장점이 있다. 특히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는 어린 세대도 애니메이션이니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태일은 누구인지 질문하고, 저 장면은 왜 그런 건지 질문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좀 더 많은 세대가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많이 떠올리면 좋겠다.
▷ 첫 장편 '태일이'를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홍준표: 전태일 열사를 조금 더 우리가 가까이서 바라보면 좋겠다. 단지 그분이 대단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평범한 청년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보고 목소리를 낸 데 집중했으면 한다. 전태일 열사가 한 일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말고, 쉽지 않았지만 해냈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재에도 태일이가 겪었던 일을 겪는 노동자가 있고,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지금 시대 그리고 다음 시대에도 나아지지 않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조금 더 세세히 들여다보고 그때 태일이처럼 우리도 많은 질문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 '태일이'를 본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며 이것만은 마음에 안고 나갔으면 한다는 것, 혹은 극장을 나선 관객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까?
홍준표: 이런 생각도 좀 든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이 노동자인데, 근로기준법을 정독한 분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봤다. 나도 '태일이'를 만들면서 제일 처음에 했던 게 근로기준법을 정독한 거였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작업을 완성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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