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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메시지·한국적 이야기로 대중문화제국 휩쓴 'K - 한겨레

[K팝·드라마, 엔터산업 본진서 우뚝]
‘MZ세대→중장년’ 미 팬층 확대
‘쓴소리’ 팬클럽 문화도 전염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K콘텐츠 제작 지원 확 늘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1월2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 등 3관왕을 수상했다. 빅히트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1월21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아티스트’ 등 3관왕을 수상했다. 빅히트뮤직 제공
“케이팝과 케이콘텐츠는 대중문화 왕국인 미국에서 서브컬처에서 주류로 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25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김숙영 캘리포니아대학(UCLA) 연극영화대학 교수는 케이팝과 케이콘텐츠가 과거엔 특정 계층·세대에게 소비됐으나, 요즘엔 보편화·대중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교수 집엔 추수감사절을 맞아 중국, 대만 등 동양계 학생 열댓명이 모였다. 대만 출신 유학생 첸은 유시엘에이 마칭밴드가 그룹 방탄소년단(BTS) 노래에 맞춰 공연을 펼치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학교에서 화제가 됐다고 했다. 중국 광둥성 출신 유학생 왕은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케이팝 아이돌 이름을 줄줄이 얘기했다. 11월27~28일, 12월1~2일 네 차례 열린 방탄소년단 공연 ‘비티에스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엘에이’엔 21만명 이상이 운집했다.
케이팝의 인기는 음원·음반 판매량에서도 확인된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다이너마이트’(126만건 다운로드)에 이어 2021년에도 ‘버터’(188만9천건)로 2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디지털 음원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지난해 최다 스트리밍 순위를 보면, 방탄소년단은 1위 배드 버니, 2위 테일러 스위프트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스포티파이에서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한국 아티스트 10명(팀)의 스트리밍 횟수는 137억회가 넘었다. 이는 전년(106억회)보다 약 29% 증가한 수치다. 또 케이팝 음반과 굿즈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쇼핑몰 ‘케이타운포유’의 미국 판매 음반 실적을 보면, 2019년 27억원에서 2021년 149억원으로 2년 새 5배 넘게 증가했다.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2022년은 ‘케이컬처’의 글로벌 주도권 원년이 될 전망이다. 1960년대 비틀스를 앞세운 영국 록 음악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빗대 ‘케이-인베이전’(케이-침공)의 해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해 방탄소년단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쏘아올린 케이컬처의 대약진이 새해부터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과 함께 탄력을 받고 있다. 9일 오영수(78)는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티브이(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가 출연한 오징어 게임>이 비록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후보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 드라마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콘텐츠뿐만이 아니다. 국내 기획사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서 활동할 케이팝 가수를 준비하고 있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는 할리우드 제작사 엠지엠(MGM)과 손잡고 미국에서 활동할 보이 그룹 ‘엔시티(NCT)-할리우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도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에서 여성 케이팝 그룹 데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지난해 말 엔터테인먼트의 본진 미국을 찾아 그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년 만에 여는 오프라인 대면 콘서트 ‘비티에스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엘에이’가 지난해 11월27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모인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년 만에 여는 오프라인 대면 콘서트 ‘비티에스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엘에이’가 지난해 11월27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모인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2030에서 5060세대로 넓어진 케이팝 팬층 지난해 11월26일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에는 보랏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보라색 의상을 입은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들 속에 50대 여성 조앤리가 있었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왔다는 그는 몇해 전 아미가 됐다. “4년 전 큰돈을 들여 사업을 했는데 200만달러(한화 약 24억원)가량 손실을 봤다. 그때 한 친구가 방탄소년단의 ‘둘!셋!(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 ‘에필로그: 영 포에버’라는 노래를 보내줬다. ‘50대에게 웬 아이돌 그룹이냐’며 듣지도 않았다.” 그는 우연히 플레이된 노래를 듣게 됐다. “세상이 등 돌렸다고 느꼈을 때, 그 노래는 큰 위로가 됐다. 너무 절절해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울다가 통곡하는 바람에 경찰차가 서기도 했다.”
지난해 11월26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페 ‘드라곤 보바’에서 방탄소년단 아미가 사진을 찍고 있다. 정혁준 기자
지난해 11월26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페 ‘드라곤 보바’에서 방탄소년단 아미가 사진을 찍고 있다. 정혁준 기자
미국 내 케이팝 팬의 연령대가 넓어지고 있다. 엠제트(MZ·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에서 50~60대 중장년층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비단 케이팝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김 교수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이전엔 아시아계 중년 여성들 중심으로 소비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 젊은층으로 퍼지더니, 이젠 한국에 관심 없던 중년 남성층까지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엠제트세대의 충성도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공연장에서 만난 20대 아미 파올라 오초아는 자신이 구입한 응원봉 ‘아미밤’을 보여주며 “오늘만 (방탄소년단 굿즈를) 600달러(약 71만원)어치를 샀다”고 자랑했다. 김 교수는 나이·국적·인종을 초월한 케이팝의 인기 요인을 미국의 사회환경적 특징에서 찾았다. “요즘 미국 젊은층은 채식주의, 비윤리적인 동물사육 반대, 소비자의 윤리적인 문제 등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다. 케이팝 가수들은 이런 얘기에 귀 기울이고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에서 음악 유튜버로 활동하는 박선화씨는 문화적인 이유를 말했다. “미국 부모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미국 래퍼 등이 부르는 많은 노래에 욕설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방탄소년단은 다르다. ‘부족한 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미국 부모는 방탄소년단이 이런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계속 들려주길 원한다.””
지난해 11월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아미들이 방탄소년단 굿즈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다. 정혁준 기자
지난해 11월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아미들이 방탄소년단 굿즈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다. 정혁준 기자
지난해 9월 유튜브 구독자 순위에서 1위였던 캐나다 팝가수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그룹 블랙핑크의 행보도 다르지 않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10월 구글 주최 환경 캠페인 ‘디어 어스’에서 연설자로 나와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했다. 조주종 와이지 유에스에이(YG USA) 지사장은 “블랙핑크가 유튜브 퀸이라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실제 ‘넘버원’이 됐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며 “그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좋은 메시지를 (세상을 향해) 말하려고 한다”고 했다. 케이팝은 미국의 팬 문화도 바꾸고 있다. 가수를 지지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통해 연대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흑인인권운동 캠페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생명은 소중하다)와 코로나 이후 증가하는 아시아인 증오 범죄 대응에도 미국 아미가 함께 뜻을 모았다. 김 교수는 이런 변화를 한국 팬클럽에서 찾았다. “미국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 팬클럽은 기획사에 쓴소리하는 매서운 팬덤이다. 이런 한국 팬클럽 문화가 전세계 팬덤 문화로 이식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아미들은 방탄소년단 소속사(빅히트뮤직)의 모회사인 하이브가 엔에프티(NFT) 사업 진출 등으로 너무 상업적으로 나가고 있다며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21년 1월31일 오후 2시 열린 블랙핑크의 첫 온라인 콘서트 ‘더 쇼’(The show).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21년 1월31일 오후 2시 열린 블랙핑크의 첫 온라인 콘서트 ‘더 쇼’(The show).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세븐틴, 엔시티127, 슈퍼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있지(ITZY) 등이 줄줄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고, 올해는 정상을 노리고 있다. 트와이스, 에이티즈 등은 올해 미국 순회공연을 연다. 박위진 로스앤젤레스(LA)한국문화원 원장은 “현재 미국은 제2, 제3의 비티에스를 받아들일 토양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미국 시장은 열려 있다. 최근 문화원이 ‘케이팝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한국의 신인 가수였지만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고 했다.
<고요의 바다>. 넷플릭스 제공
고요의 바다>. 넷플릭스 제공
글로벌 OTT 경쟁 속에 주가 높이는 케이콘텐츠 지난달 24일(한국시각)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고요의 바다>는 전세계 넷플릭스 티브이쇼 부문 3위(플릭스패트롤 기준)까지 올랐다. 앞서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1위를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 열풍 이후 전세계에서 도드라지는 현상은 케이콘텐츠의 인기 상승이다. 올해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의 사활을 건 경쟁이 예고되는 해다. 신규 영화·시리즈 등에 투자하는 금액만 수백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분석을 인용해 올해 디즈니플러스는 230억달러를, 넷플릭스는 170억달러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고 보도했다. 지난해에 견줘 각각 35~40%, 25% 증가한 수치다.
<닥터 브레인>.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닥터 브레인>.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실탄을 확보한 오티티 업체들이 향하는 곳 가운데 하나로 케이콘텐츠가 손꼽힌다. 이미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케이콘텐츠가 충분히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오티티 업체들의 ‘제2의 오징어 게임’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성호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비즈니스센터장은 “최근 미국의 방송 콘텐츠 에이전트들은 한국에서 어떤 드라마가 나왔는지, 어떤 드라마가 인기인지를 다 꿰고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도 아이디어가 고갈되다 보니 신선한 제3지대 드라마 콘텐츠를 찾고 있다. 한국 콘텐츠 위상이 높아진 걸 실감한다”고 했다.
<그리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그리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그리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그리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이런 위상의 변화는 콘텐츠 저수지인 한국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 진출 이후 2020년까지 오징어 게임> 고요의 바다> 솔로지옥> 등 다양한 장르의 케이콘텐츠에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투자금 확대에 따라 투자 작품 수도 늘어나, 2018년 4편에서 2021년 20편으로 늘었다. 고현주 넷플릭스 코리아 피알(PR) 디렉터는 이런 투자에 대해 “넷플릭스는 한국 창작업계와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훌륭한 이야기는 어디서나 제작될 수 있고, 국경을 초월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넷플릭스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론칭한 디즈니플러스는 올해 조인성·한효주 등이 출연하는 무빙>을 비롯해 너와 나의 경찰수업>, 그리드> 등에 투자했다. 지난해 닥터 브레인>을 선보인 애플티브이플러스는 올해 윤여정·이민호 주연의 파친코> 등을 준비 중이다.
<너와 나의 경찰수업>.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너와 나의 경찰수업>.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도 케이콘텐츠 확산에 나서고 있다. 씨제이이엔엠은 지난해 11월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유통사인 엔데버 콘텐트 지분 80%를 7억7500만달러(약 925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규모는 씨제이그룹의 인수 사상 세번째다. 엔데버 콘텐트를 기반으로 씨제이가 가진 지식재산권(IP)을 북미와 남미 등으로 확산시킨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조심스럽게 우려되는 점을 짚는 이도 있다. 주성호 센터장은 “한때 홍콩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똑같은 스토리, 스타일을 반복하다 몰락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다르게 나가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멈추면 죽는 상어와 같다. 자면서도 계속 헤엄쳐야 한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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