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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황금시대' 복원해낸 세밀화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8~12세기 이란-아프간-우즈벡-신장 등은 세계 과학·철학·예술의 중심
이슬람 내부 분열, 신비주의 확산으로 이성, 포용적 흐름 막히며 쇠락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중앙아시아의 황금기, 아랍 정복부터 티무르 시대까지
S. 프레더릭 스타 지음, 이은정 옮김/길·4만5000원 서기 999년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살던 두 청년이 400㎞ 넘는 거리를 오가는 긴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다른 태양계가 존재하는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어떻게 평가할지 등 많은 철학과 과학적 질문을 두고 학술 논쟁을 벌였다. 한명은 28살의 알 비루니로 물리학·지리학·심리학·약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 논쟁 상대는 18살의 이븐 시나. 장차 의학·철학·물리학·화학·천문학·신학·윤리학·음악이론을 아우르며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된 인물이다. 라틴어로 번역된 그의 <의학정전>은 서양 근대 의학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750년부터 1150년 무렵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이런 논쟁은 흔한 풍경이었다. 수많은 과학자, 건축가, 예술가, 수학자, 역사가, 시인 들이 지적 활력이 넘치는 찬란한 계몽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유라시아 지역 전문가인 프레더릭 스타가 쓴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원제 )는 이 시대 주요 인물들과 역사 흐름을 씨줄과 날줄 삼아, 그동안 망각되었던 중앙아시아의 황금시대를 페르시아 카펫처럼 정교하게 복원해냈다. 이란 북동부 호라산 지역부터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는 오늘날에는 전쟁과 혼란, 억압과 낙후의 이미지로 얼룩져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지역에서 ‘왜 이슬람 문명은 서구에 비해 낙후했는가’의 답을 찾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 책은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시대를 세밀화처럼 그려내면서, “고집스럽게 주변적이고 후진적인 지역으로 규정되어온 중앙아시아가 수세기 동안 정치, 경제 세계의 주축이자 유라시아 대륙에서 과학, 철학, 지적 생활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실증해낸다.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 ‘일대일로’의 교차로로만 여겨지지만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역사체였다. 아랍 정복자들은 750년께 중앙아시아를 정복했지만, 고유의 전통과 문화, 경제적 힘을 가진 이 지역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혔고, 중앙아시아 세계의 자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랍 정복자들의 수도 바그다드가 내부 반목과 쿠데타 갈등으로 쇠퇴하자, ‘아랍 르네상스’를 주도한 선구자들은 아랍인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출신의 이란계 지식인들이었다. 
서기 500년께 이미 거대도시를 이룬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Merv) 유적. 원형으로 겹겹이 쌓은 성벽의 가장 바깥쪽 길이만도 250㎞에 달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분리한 하드리아누스 성벽의 세 배에 이르는 세계적 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길 제공
서기 500년께 이미 거대도시를 이룬 지금의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Merv) 유적. 원형으로 겹겹이 쌓은 성벽의 가장 바깥쪽 길이만도 250㎞에 달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분리한 하드리아누스 성벽의 세 배에 이르는 세계적 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길 제공
중앙아시아는 어떻게 지적 요람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무역으로 성장한 대도시들이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중앙아시아 각지를 잇는 무역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대규모 상인 계층이 형성됐으며, 도시마다 특화된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되었지만 이후 중앙아시아 도시들에서 중국보다 훨씬 질 좋은 종이들이 생산되었고, 양질의 사마르칸트의 종이가 당시 세계적 표준이 되었다. 무역으로 재력을 갖춘 이들은 학문과 예술을 후원했고, 도시마다 훌륭한 도서관들이 세워졌고 필사본 서적 경매는 사람들로 붐볐다. 무역 루트를 따라 사람과 문화가 활발히 교류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 관용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정치적으로는 침략과 정복, 권력의 교체가 거듭되는 혼란 속에서도, 당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식과 문화가 번영했다. 9세기부터는 중앙아시아 역사의 무대에서 튀르크인들의 역할도 커졌다. 유목민 출신이었던 튀르크인들은 군인으로 권력을 키웠고, 왕조를 세웠으며, 문화적 역할도 확대했다. 오늘날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에서 성장한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는 ‘병사나 건달들의 언어’로 여겨지던 튀르크어를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와 동등한 언어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튀르크어는 이후 페르시아어에 버금가는 문화 언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페르시아와 튀르크 문화의 융합으로 도시와 초원, 농경과 유목, 교역과 정복의 융합이 완성되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가득했던 중앙아시아 황금기는 왜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을까. 몽골 침략 과정에서 벌어진 학살과 파괴도 영향을 미쳤지만 핵심 요인은 아니라는 게 지은이의 논지다. 퇴락의 징후는 몽골 침략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슬람 내부의 분열, 시아 수니를 비롯해 하위 종파들의 극단적 대립, 과학적이고 사변적인 사고의 퇴색”이 종말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11세기 무렵 수니파와 시아파, 여러 적대적인 종파들간의 충돌이 격렬해졌고, 종교와 이성의 관계를 둘러싸고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 시기에 셀주크 투르크 재상이었던 니잠 알 물크는 종교학교인 니자미야 마드라사를 주요 도시들에 세워 정통 수니파의 ‘순수한 교리’를 강조하고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다른 종파들을 굴복시키려 했다. 그로부터 이 임무를 부여받았던 학자 가잘리는 “소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거창한 이름을 알게 된 데서 기인하는 불신앙”을 비판하면서, 이성과 인과를 강조하던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이단적 본질을 비판한다. 지은이는 이후 이성보다는 신과의 직접적 교감을 중시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운동을 주도한 가잘리가 “과학과 철학이 꽃피웠던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고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몽골 점령이 끝난 이후 이 지역에서 티무르, 무굴, 사파비 제국이 강력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등장했지만, 이들은 새로운 지식 분야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관용적 측면이 사라지고 신정국가적 면모가 강해지면서 ‘계몽 시대’는 회복되지 못했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이 책의 번역자이자 튀르크 역사 연구자인 이은정 박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기한다. “유럽인들은 획기적 변화를 경험했고, 티무르·무굴·사파비 제국은 후진적이었다는 것은 유럽중심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해석일 수 있다”면서,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를 ‘계몽의 시대’로 규정한 중세 시대로 박제하고, 튀르크적 요소를 비롯한 유목민 문화를 폄훼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중앙아시아의 역사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 지역의 역사적 흐름과 풍성한 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전문가의 훌륭한 번역과 해제도 책의 완성도를 더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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