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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핵심은 저항정신, 지금도 미래에도 필요해요” - 한겨레

민중미술 40년 회고록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펴낸 김정헌 작가
1994년 그린 대작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 아직도 서 있는…> 앞에 선 김정헌 작가. 2019년 김종영미술관 회고전 때 찍었다. 신간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의 표지그림으로 쓰인 작품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첫 농민봉기가 일어난 전북 정읍 말목장터의 감나무를 배경으로 괭이 들고 선 농민의 굳건한 자태를 그렸다. 노형석 기자
1994년 그린 대작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 아직도 서 있는…> 앞에 선 김정헌 작가. 2019년 김종영미술관 회고전 때 찍었다. 신간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의 표지그림으로 쓰인 작품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첫 농민봉기가 일어난 전북 정읍 말목장터의 감나무를 배경으로 괭이 들고 선 농민의 굳건한 자태를 그렸다. 노형석 기자
김정헌 작가가 자신의 삶과 민중미술 40년사를 되돌아보는 회고록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창비 펴냄)를 최근 발간했다. 김 작가는 1980년 창립전을 열어 7~8년 활동했던 한국 최초의 현실비판적 미술인 모임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의 창립 멤버다. 이후 화업뿐 아니라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대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4·16재단 이사장 등도 두루 맡았다. “부족한 채로 살아갈 지혜가 나의 과유불급”이라고 책에 썼지만, 문화민주화, 마을공동체문화운동 등에도 몰두하면서 진보 진영에서 빠질 수 없는 전방위적 역량을 갖춘 예술인이자 공직자로 자취를 남기게 됐다. 이런 그가 회고록에 그림과 미술운동 못지않게 문재인 대통령 부자와의 첫 대면 같은 지인들과의 만남에 얽힌 회우담을 숱하게 풀어낸 것은 필연처럼 비친다. 그는 1993년 당시 인권 변호사 문재인의 부산 집에 갔다가 고교 2년생 아들 문준용의 스케치북을 보고 “야, 이 정도면 미술대학 가기 충분하다”라고 했던 일화를 책에 소개했다. 이후 문준용은 실제로 작가가 됐다. 지난 3일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만난 그는 사람과의 관계가 책의 중심임을 강조했다. “예술의 정의와 평등을 소망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민중미술판의 역사를 풀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수많은 관계가 한올한올 얽히고설켜 민중미술의 역사란 직조물을 만들어낸 것이죠. 80년대부터 미술 한가운데를 돌파해오면서 그 역사를 책으로 만들었으니 기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회가 생기지요.”
&lt;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gt; 표지. 창비 제공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표지. 창비 제공
책 제목에서도 보이듯 평양에서 자동차학원을 운영한 괴짜 발명가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월남해 부산에서 자란 이야기, 여느 화가처럼 그림에만 매달리지 않고 사회를 품은 미술이라는 화두를 안고 글과 운동 사이를 곁눈질하면서 평생 사회적 실천에 힘써온 그의 삶과 세상 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1·2부로 나눠 1부엔 이야기 흐르는 그림을 그리며 여러 영역의 문화예술운동에 투신했던 자신의 인생을, 2부엔 예술과 사회, 보는 것 등에 대한 <한겨레> 칼럼 등을 전재해 실었다. 책을 펴낸 창비는 작가 인생 초기와 말년에 긴밀한 인연의 끈을 놓아주었다고 회고한다. 1966년 대학 재학 시절 <창작과 비평>을 보다 접한 문화사가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탐독하면서 사회를 품은 미술, 현실을 바꾸는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이 대학 시절 집요하게 고대와 중근세에 걸친 전통 미술사를 탐구하며 리얼리즘 화풍의 칼날을 벼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마침내 오윤, 최민, 성완경, 신학철 등 비평가, 작가 동료들과 ‘현발’ 동인을 시작하면서 획일적인 단색조 회화 모더니즘의 굴레에 갇혔던 한국 미술판에 새 장을 열어젖힌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본격화했다. 1부에서는 ‘행복의 모습’전, ‘도시와 시각’전으로 이어진 현발의 활동상과 김용태, 오윤, 최민, 원동석 등 지금은 세상을 떠난 동인 지우들과의 일화들을 회상한다. 정적이 되어버린 보수파 미술인 오광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겪은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나 이후 마을 예술문화운동에 전념하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기록하는 이야기청 활동에 전념하게 된 행적, 역사에 숨은 서사적 그림을 그리는 데 전념한 행보들은 그림에 집중 못하는 회의주의자, 현실에 기민한 행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지난 3일 낮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만난 김정헌 작가. 자신의 신간 &lt;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gt;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제 글 감옥에서 풀려난 것 같아 해방감이 든다”고 했다. 노형석 기자
지난 3일 낮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만난 김정헌 작가. 자신의 신간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제 글 감옥에서 풀려난 것 같아 해방감이 든다”고 했다. 노형석 기자
그는 “미술이 장사치로 전락하면 안 된다”면서 작가, 미술사가, 비평가가 자본주의 미술의 사회적 여건 속에서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미협 같은 진보 미술인단체가 시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진부한 조직이 되고 일부 민중미술가들은 최근 시장에 잘 팔리는 꽃그림 등 인기 소재를 그리는 데 급급한 양상들도 질타했다. “우리 사회에 가짜는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모든 언론 매체에 ‘팩트체크’라는 가짜 감별사까지 등장했겠는가. 다시 한번 사회 전반에서 가짜를 몰아내고 적폐를 청산하는 새로운 리얼리즘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진실과 정의에 가까이 가려는 리얼리즘 정신이 미술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284쪽) 미술판에서 민중미술은 이미 지난 사조 취급을 받는다. 2022년 한국 사회에서도 리얼리즘 미술이 여전히 필요할까? 당위성을 묻자 김 작가는 “무슨 답답한 질문이냐”고 했다. “민중미술의 중심가치는 저항정신이었어요. 그게 계속 존재해야 살아 있는 사회지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와 춤에 저항이 없는 거 같아요? 그건 미래에도 필요해요. 저항정신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야.”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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