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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볼만한 청년작가 전시들]
서울 을지로의 대안전시공간 ‘공간 형+쉬프트’에 전시 중인 현남 작가의 조형물 일부. ‘축경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전시에서 작가는 수석과 분재 등 전통 생활문화의 산물들을 왜곡하고 비튼 작업을 내보인다. 에폭시 등의 합성수지 재료와 금속 조각들을 뒤섞어 녹여 넣거나 부풀리고 바스러뜨리는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든 기괴한 덩어리들이 좌대 위에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달 초 코로나19 사태의 재확산으로 수도권 국공립미술관들은 다시 문을 닫았다. 화랑가는 폭염 속에 깊은 무력감에 빠졌지만 서울 도심 구석에 자리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 현장에선 바이러스가 무색한 창작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울 을지로의 대안전시공간 ‘공간 형+쉬프트’에 전시 중인 현남 작가의 조형물 일부. ‘축경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전시에서 작가는 수석과 분재 등 전통 생활문화의 산물들을 왜곡하고 비튼 작업을 내보인다.
이 가운데 ‘힙지로’로 불리는 서울 을지로 대안 전시공간들의 신작을 눈여겨 봄직하다. 을지로3가역 1번 출구 근처 이화빌딩 3층에 있는 ‘공간 형+쉬프트’는 ‘축경론’이란 제목으로 현남 작가의 인공 조형물 개인전(23일까지)을 선보인다. 축경이란 자연 풍경을 압축하고 뭉뚱그리는 기예를 일컫는 말이다. 작가는 인물상 위주로 작업하는 조각 장르에서 소외됐던 풍경을 주된 작업 대상으로 설정한다. 에폭시, 폴리스티렌 같은 인공적 재료를 녹이고 금속 조각 등을 집어넣은 뒤 투명 수지를 부어 응고시켜 수석이나 작게 다듬은 바위 같은 모양의 기괴한 조형물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세워놓았다. 동아시아에서 자연 경치를 축소해 감상하는 전통적인 생활 문화로 수석, 분재, 석가산 등의 이미지를 21세기 디지털 기계 문명 시대의 감수성으로 변주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기획 노트에서 수평적이고 가시적인 성질의 풍경을 수직적이고 물질적인 조각으로 재구성했다고 밝힌다. “뒤엉키며 녹아내리고 과열되어 깨지거나 부풀어 오르고 산만하게 바스러지고 어긋난 사물 하나하나는 전시를 통해 저마다가 하나의 축소된 풍경이자 동시에 거대한 풍경의 파편으로 제시된다.”
을지로 상업화랑에 전시 중인 박지현 작가의 목형 회화 출품작 중 일부분. 스티커나 상자, 봉투 등을 만들 때 틀로 쓰이는 목형의 폐기물을 모은 뒤 색안료를 섞은 투명 수지를 덧씌워 실험적인 색채회화처럼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역시 을지로3가역 6번 출구 앞 대림상가 근처의 대안공간 상업화랑에 가면 이른바 ‘도무손’이라는 익살스러운 일본어 약칭으로 불리는 인쇄용 목형을 만나게 된다. 톰슨이란 서구 기술자가 처음 만들어 개발했다는 이 목형틀을 화폭 삼아 만든 갖가지 모양의 색면 회화를 내곤 박지현 작가의 개인전 ‘톰슨#’(21일까지)이다. 그가 내놓은 목형 캔버스는 을지로 ‘인쇄 골목’에서 카드, 스티커, 박스, 봉투 등의 형태를 만든 뒤 닳아 버려진 것들을 주워 전혀 다른 용도로 재활용한 것이다. 탱크도 만든다는 을지로 공구 골목에서 도무송 목형을 배경으로 미니멀한 단색조 회화를 만든 역발상이 돋보인다. 무미건조하게 나열된 듯한 목형 색조회화의 모습이 을지로에 숨은 공간적 맥락을 색다르게 사유하도록 이끈다.
낙원상가 4층 대안공간 디피(d/p)에 전시 중인 작가그룹 무진형제의 2채널 영상설치작품 <여름으로 가는 문>.
청계천을 건너 북쪽의 낙원상가로 발걸음을 돌린다. 상가 4층의 대안공간 디피(d/p)에서 청년작가 1팀, 2명의 작품들로 구성된 기획전 ‘눌변가’(20일까지)를 접하게 된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1세대 비영리 전시공간인 아트스페이스풀의 신지이 기획자가 꾸린 청년 작가전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소규모 대안공간 사이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기획자의 안정된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전시장을 번갈아 내어주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작가그룹 무진형제의 2채널 영상설치물 <여름으로 가는 문>은 지상에서 우주로 옮겨가는 시점의 거대한 변화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더운 여름날 줄넘기하는 소년의 손과 발 세부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를 관찰하는 시점은 수직으로 치솟으면서 계속 넓어지고 높아진다. 아득한 허공으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소년은 아파트 공원의 한 점으로 바뀌고, 우주 공간으로 더 올라가면 그는 사라지고 지구의 둥근 형태만 나타나게 된다. 일상과 우주를 축약한 4분30초의 감상시간은, 일상과 존재의 유한성을 곱씹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선 이외에도 짧은 여행의 대화와 기억을 환상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재구성한 이윤이 작가의 영상물 <메아리>와 찰나의 순간을 드로잉 조각으로 만들고 다시 화폭 위에 옮긴 노은주 작가의 점착성 강한 회화 작업도 볼 수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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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7, 2020 at 01:3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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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막지 못하는 젊은 '창작 열정' : 음악·공연·전시 : 문화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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