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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문화로 본 `개사` - 매일경제 - 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17] 최근 인터넷이나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들을 보면 놀랍다. `얼죽아` `갑분싸` `핵인싸`의 뜻을 알기도 전에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신조어들을 쫓아가기 힘들 정도다. 가끔 재미 삼아 신조어 테스트를 해보면 아는 단어가 몇 개 없음에 허탈함을 느끼기도 한다.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하위문화가 북한에도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오늘은 하나의 예로 `개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하위문화는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주류적인 문화에 반하여 특정 세대, 지역, 계급 등이 공유하는 어떤 문화이다. `얼죽아`와 같은 신조어를 사용하는 신세대 문화 또는 인터넷 문화도 하위문화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하위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저항이다. 기존 세대가 만들어놓은 문화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어떤 저항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개사`는 일반적으로 글로 써서 나타낸다는 말로 유명한 노래의 가사를 다른 말로 바꿔 부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북한에도 이러한 특정 노래를 개사해 부르는 하위문화가 있다. 북한에서 `개사`는 북한 당국이 만들어놓은 노래 가사에 북한 주민들의 현실에 맞게 내용을 바꾸어 부르는 것을 말한다.


개사가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행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계기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개사`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 장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한 장소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계기로 활성화된 기차역, 열차 안, 시장 등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구독자들은 쉽게 이해하겠지만 북한에서 장거리를 이동할 때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이용한다. 기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전기가 끊기면 몇 시간이고 멈춰 있는데 가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락회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열차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 없는 아이들, 즉 꽃제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주로 이 개사한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북한의 가요를 개사해서 부르는 장소는 공식적인 자리보다는 비공식적인 곳이다. 기차역과 열차 안에서 부르는 개사한 노래들은 다시 시장으로 퍼지고 시장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특정 세대로 흘러드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대표적인 북한의 노래와 그것을 어떻게 개사해서 부르는지를 보자.

- 원곡
첫사랑을 약속할 때 그대는 말하였네
제 한 몸은 뿌리 되고 날더러 꽃잎 되어
한 나무 아지 위에 행복을 꽃피자던
그 말이 고마워 눈물로 대답했네

새살림을 꾸릴 적에 그대는 말하였네
제 한 몸은 흙이 되고 날더러 샘물 되어
행복이 무르익은 열매를 따보자던
그 뜻이 고마워 웃으며 대답했네

- 개사
첫사랑을 약속할 때 그대는 말하였네
있을 때는 때려 먹고 없을 땐 꿔다 먹고
굶을 땐 굶더라도 먹을 땐 콱 먹자던
그 말이 배짱 맞아 한 가정 이루었네

위 노래는 `해운동의 두 가정`이라는 북한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다. 개사를 보면 원곡의 느낌과는 다르게 일반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게 아주 현실적이다. 또한 주변 지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개사도 지역마다 조금씩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있을 때는 때려 먹고 없을 때는 꿔다 먹고"라든지, "냉장고 색텔레비 사놓고 살아보자 그 말에 홀딱 속아…" 등 노래 하나를 가지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개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은 수많은 북한 대중가요를 이런 방식으로 개사하여 부른다. 한때 북한 당국은 개사해서 부르는 현상을 뿌리 뽑는다고 엄격하게 단속하기도 했다. 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면, 하위문화로서 어떤 기능을 하게 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지점이다.

[이성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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