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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권하는 우리 국악 접목 ‘대취타’
한 피디가 자사 심의실에 문의했더니 “방송 부적격” 답변 들어
세계가 열광하는 노래 정작 우리 방송에선 못 틀어
“참 아이러니하죠?”
그래도 공영방송사로 지켜야 할 역할 있다 철저 심의론도 만만찮아
“슈가의 ‘대취타’를 아시나요? 꼭 한번 찾아보세요.” 지난 10일 세종학당을 찾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온라인 강의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이 곡을 언급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낸 솔로곡이다. 박 장관의 추천 이유는 이랬다. “한국의 궁궐도 나오고 재미있는 리듬으로 비티에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대취타는 태평소를 사용하는 등 우리 국악을 활용했고, 뮤직비디오는 고궁에서 촬영했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 1억뷰를 기록하면서 전세계에 우리의 전통을 알리는 구실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하지만 문체부 장관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강력 추천한 이 곡을 정작 우리 방송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다. 가사 중 나오는 욕설 때문이다. 최근 한 지상파 라디오 피디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대취타’를 들려주려고 자사 방송사 심의실에 문의했다가 ‘방송 부적격’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단지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방송 3사에 이 곡에 대한 심의를 신청하지는 않아 공식적인 ‘방송 불가 곡’은 아니다. “우리 국악의 한 종류인 대취타를 제목으로 하고, 태평소를 비롯한 전통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정부에서 널리 추천하고 전세계가 열광하는 이 노래를 정작 우리 방송에서는 틀 수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당 피디가 전한 말처럼 ‘대취타’ 사례는 소셜미디어로 전세계가 소통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방송사에도 깊은 고민을 안긴다.
시대마다 변해온 방송 부적격 기준…대다수가 선정성·욕설 때문 가수들이 내놓는 곡이 전파를 타려면 사전에 방송 가능 여부를 묻는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방송사마다 자체 규정을 두는데, 보통 10개 남짓한 항목으로 구성된다. 미세하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하다. △욕설 또는 비속어가 포함됐느냐 △사회 통념상 문제의 소지가 있느냐 △특정 상품에 관한 홍보성이 있느냐 등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보통 매주 300~500곡을 심의한다. 최근에는 한주에 600곡을 심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가 ‘방송 불가’를 열쇳말로 내부 시스템에서 검색을 했더니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통틀어 모두 1만6천여개가 검색됐다. 이는 방송 불가 판정을 한번이라도 받은 적이 있는 곡을 모두 포함한 누적 집계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통상적으로는 욕설과 비속어 사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윤미래와 비지, 타이거 제이케이(JK)가 결성한 팝그룹 엠에프비티와이(MFBTY)의 곡 ‘안 된다고 해도 될 때까지 해’는 곡 마지막 부분에 ‘F××k cancer’라는 욕설 때문에 방송 불가 곡이 됐다. ‘대취타’ 가사에도 ‘×밥’ 등의 비속어가 다수 있다. 선정성도 방송 불가의 큰 원인 중 하나다. 트리플 에이치(H)의 2017년 곡 ‘꿈이야 생시야’는 “어젯밤에 충분히 뭔가 했어/ 우리 둘이 하나 돼/ 그래 다시 해/ 우리 다시 해” 등의 가사가 남녀 간의 정사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최근 두 번째 음반으로 컴백한 아이돌 그룹 네이처는 타이틀곡 ‘어린애’의 뮤직비디오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욕설·선정성 등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이유는 같지만, 구체적인 가사를 들여다보면 갈수록 노랫말이 직접적이고 자극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이별한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곡이 됐다는 배호의 ‘0시의 이별’은 “24시간이 모자란다”는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방송 불가의 기준도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화해온 셈이다.
“다양성·포용성 시대에 1차원적 심의…기준 재검토해야” 문화방송>의 경우 1964년 방송 심의 기준이 처음 제정된 후 지난해 9월까지 1년에 한번 혹은 두번 정도 규정을 개정해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유튜브 등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공유하게 됐고, 다양한 장르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방송사의 곡 심의 기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탄소년단처럼 문화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이 자주 등장하는데, 문제가 되는 단어 하나만으로 곡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안 된다고 해도 될 때까지 해’도 문제가 된 마지막 부분은 좌절하지 말자 등 여러 의미를 담은 표현이지만, 방송국에서 1차원적인 뜻에 한정해 가사를 해석했다는 것이 가요계의 주장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도 “예쁜 사랑과 슬픈 이별을 전하는 곡도 아니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에서 그 의미를 한마디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1차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차 다양성과 포용성이 확대되는 대중문화계에서 노랫말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극단적인 선정성이나 불필요하고 과도한 욕설이 담긴 가사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를 위해 방송 심의 기준도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파이드 파이퍼’의 경우, 노랫말에 특정 에스엔에스 이름이 들어가 방송 부적격 곡이 됐다. 하지만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너튜브’라는 말을 사용하는 등 유튜브를 연상케 하는 단어들은 끊임없이 쓰인다.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한 적 있는 한 케이블 예능 피디는 “한두 시간 내내 ‘너튜브’라는 말을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노래 가사에 직접적으로 ‘유튜브’가 나오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는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며 “너튜브라고 한다고 해서 유튜브인 것을 모르는 시청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고 심사하는 위원들의 구성도 다르다 보니, 한 곡을 두고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한국방송>은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에 견줘 심의가 더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요계 관계자들은 원곡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을 수정할 경우 한국방송>용은 따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 2015년 달샤벳의 ‘조커’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성적인 의미를 담은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한국방송>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다른 방송사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심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유튜브 시대, 중요성 낮아지는 방송 심의…방송사 고민도 깊어져 이런 상황 속에 최근 들어서는 방송 심의의 중요성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취타’의 방송 부적격 논란에 대해 방탄소년단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쪽은 “‘대취타’는 방송 활동 계획이 없기 때문에 심의 자체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송 심의 요청을 하지 않는 곡도 점차 늘고 불가 판정을 받아도 수정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수 치타도 첫 정규 음반 수록곡 18곡 중 무려 12곡이 한국방송>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재심을 요청하지 않았다.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또 다른 한 가수 역시 “방송 불가는 예상했다. 전혀 아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음악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에 방송 출연을 위해 작품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피디는 “방송을 통해 곡을 들려주는 것이 간절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아무 의미 없는 노랫말을 쓴 것이 아닐 텐데, 가사를 1차원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 속뜻과 맥락까지 읽어 (방송 부적격 여부를) 판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사도 고민이 깊다. 케이블 채널과 유튜브에서 심의 규정을 완화한다고 해서 방송사마저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그럼에도 우리는 심의 기준을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다. 일반 케이블이나 유튜브 등 새 매체의 완화된 기준을 따르지 않는 것은 공영 방송사로서 꼭 지켜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 역시 “불특정 다수가 지켜보는 지상파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른 곳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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