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나는 모델이다'…모델을 꿈꾸는 중년들의 세계 - 한겨레

liloeconomie.blogspot.com
그대는 왜 모델을 꿈꾸는가
포커스미디어코리아와 푸미가 마련한 중년모델 콘테스트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이현아(55), 권종근(58), 안미정(52), 정준걸(57), 장인숙(55), 김영선(64), 김석(62)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포커스미디어코리아와 푸미가 마련한 중년모델 콘테스트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이현아(55), 권종근(58), 안미정(52), 정준걸(57), 장인숙(55), 김영선(64), 김석(62)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턱을 조금만 당겨보실까요? 입을 너무 앙다물진 마시고요. 아주 좋아요. 그대로~.” 찰칵. 사진 속 주인공들은 전문 모델과 진배없었다. 저마다 개성 있는 얼굴과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중년의 매력을 뽐냈다. 모델로 나선 이들은 김태우 사진가의 주문에 맞춰 눈에 힘을 주거나, 웃고, 자세를 바꿔가며 사진을 완성해갔다. 지난 14일 경기도 광주시 직동의 한 스튜디오. 모델의 모습이 카메라를 거쳐 컴퓨터 모니터에 뜰 때마다, 서른명의 현장 스태프 사이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전문 모델 같죠? 이렇게 잘하실 줄은 예상 못 했어요.” 미디어·광고회사 포커스미디어코리아의 신현경 팀장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이날 촬영은 포커스미디어코리아와 중년 패션 브랜드 푸미가 마련한 자리다. 중년(시니어)모델 콘테스트 ‘나는 모델이다’에 지원한 1091명 가운데, 대면심사 등을 거쳐 뽑은 ‘톱7’이 주인공이다. 앞으로 일반인 투표 등을 거쳐 이달 말께 이들 가운데 진·선·미 3명을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엄마는 지금부터 모델이야. 뻔뻔하게 해야 해.” “여보, 배 좀 집어넣어요.” 함께 온 가족들의 응원과 조언이 이어졌다.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미정, 김석, 김영선, 장인숙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미정, 김석, 김영선, 장인숙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안미정(52)씨는 모델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오히려 또래보다 큰 키(170㎝)가 콤플렉스였다. “어디 가나 튀었으니까요.” 그는 “큰 키를 장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고 했다. 삶은 “평범했다”.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최근 평범한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본 광고 한 편이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아, ‘이 일은 키가 커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현재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모델은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광고를 본 뒤부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선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죠.” 남편과 딸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지나보면 알 거예요. 나이가 들면,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요.” 장인숙(55)씨에게 모델은 오랜 꿈이었다. “패션 쪽 일을 하나요?” “모델을 하면 잘할 것 같아요.” 대학 시절부터 주변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모델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결혼하고 남편 일터를 따라 떠났던 고향 마을로 돌아와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는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시인이자 방과후학교 초등돌봄전담사다. 전교생이 7명뿐인 분교가 그의 일터다. 모델이란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감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를 쓰듯 옷을 입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 시를 완성하는 것처럼 옷을 고르고 어울림과 조화를 따져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인구 1036명(2019년 12월 기준)인 경남 의령군 봉수면에서 스타일이 좋은 그는 ‘모델’로 통한다. “모델, 어디 가노?” 주변의 이런 말들은 늘 그를 꿈꾸게 했다.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곽 촬영장 스태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현아, 권종근, 현장 스태프들, 정준걸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나는 모델이다’ 톱7에 오른 참가자들곽 촬영장 스태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현아, 권종근, 현장 스태프들, 정준걸씨. 포커스미디어코리아 제공
김영선(64)씨의 꿈도 모델이었다. 하지만 건강이 걸림돌이었다. 그는 지난 30여년을 간경화로 시달렸다. “꿈을 꿀 여력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꾸준한 치료와 규칙적인 운동 덕으로 그는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건강을 되찾으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할 것 같아요.” 중년모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지난 5일까지 일부 아파트 엘리베이터 티브이만을 통해 광고했는데도, ‘나는 모델이다’ 프로젝트에 몰린 50대 이상 지원자는 1091명이나 됐다. 올 상반기는 코로나19로 대부분의 백화점 문화센터가 휴관했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의 경우, ‘시니어모델 강좌’를 들은 고객은 2016년 2천여명에서 3배 이상 늘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모델 학원들은 앞다퉈 시니어 과정을 내놓고 있다. 시니어모델 아카데미인 한국시니어스타협회는 지난 6일 경기도 고양 호수공원에서 중년 시민을 대상으로 한 모델 무료강좌(‘나도 시니어모델’)를 열기도 했다. 고려대 평생교육원은 올 1학기부터 시니어 모델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고령화로 국내 시니어산업 시장 규모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5월20일 발표한 ‘고령친화산업 육성사업 결과보고서’를 보면, 2010년 33조2241억원 수준이던 여가, 요양, 식품, 의약품 등 고령친화산업 시장 규모는 2015년 67조9281억원을 넘어, 올 연말까지 124조9825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10년 새 시장이 4배나 커지면서 중년모델의 필요성도 그만큼 더 커진 셈이다.
톱7에 오른 김석(왼쪽)씨와 권종근씨가 사진 촬영 뒤 방명록에 남긴 메시지.
톱7에 오른 김석(왼쪽)씨와 권종근씨가 사진 촬영 뒤 방명록에 남긴 메시지.
전문가들은 시니어모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개성’과 ‘자신감’을 꼽았다. 1998년에 데뷔한 모델 이은영은 “과거엔 키가 177㎝ 이상이어야 하고 시니어모델은 중년다워야 한다는 등의 제약조건이 많았지만, 지금은 개성이 중요하다. 키나 신체적 특성보단 자신감,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년모델에 도전하는 이들은 대체로 유명 모델이 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았다. ‘희망’과 ‘나눔’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가 아팠던 사람인 만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요.”(김영선) “꿈에 도전하는 모습이 분교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장인숙) “수익을 좇는 대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습니다.”(김석·62) 김석씨는 이날 촬영을 마친 뒤,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경계를 허물다.” 저마다의 경계를 허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 위로 한여름의 태양 빛이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Let's block ads! (Why?)




July 20, 2020 at 03:00AM
https://ift.tt/3fLApGD

'나는 모델이다'…모델을 꿈꾸는 중년들의 세계 - 한겨레

https://ift.tt/2XUmXd9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나는 모델이다'…모델을 꿈꾸는 중년들의 세계 - 한겨레"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