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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예술가의 군상 - 대전일보

첨부사진1황재섭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꼭 2년 전 대전시립무용단 취임 후 준비한 첫 작품은 이응노화백의 이야기였다.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해 필자에게 임명장을 건네준 대전시의 요청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지역의 대표성을 띤 이야기를 브랜드화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용작품 '군상'은 동백림사건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이응노의 그림에 윤이상의 음악 그리고 천상병의 시가 접목돼 자연스럽게 준비돼 갔다. 문제는 어떻게 2차원의 그림을 3차원의 무대에 구현할 것인가였다. 동작개발을 위해 이응노의 도록을 보며 안무가 진행됐다. 필자는 안무에 있어, 늘어선 무용수들의 긴 줄에 시간차, 무게감, 순서배열 등을 이용해 도미노같이 보여지는 장면을 자주 사용한다. 음악에서 캐논형식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마치 음표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듯한 움직임들을 통해 큰 주제 하나를 놓고 돌림노래 하듯 반복과 변형을 가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패턴은 상징의 의미를 여러 잔상으로 기억되게 하고 동작 자체만으로도 묘한 중독성을 지닌다. 이 대목에서 묘하게도 이응노의 작품 중 '군상' 연작시리즈가 겹쳐져 온다. 표정 없는 수묵의 군상들이 팔을 벌려 손을 맞잡은 역동적이고 반복적인 흐름의 그림이다. 춤추는 듯 손을 맞잡거나 강강술래 하듯 누군가를 따라가는 다수의 군상들은 분명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 안무동작과 이응노의 군상그림이 일치하고 귀에 익은 윤이상의 음악이 더해지니 작품은 특별한 막힘없이 준비돼 무대에 올려진 기억이다. 이응노의 '군상' 연작은 군중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이들이 뿜어내는 힘의 분출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위대로 보이기도 하고 반핵 운동의 시위대로 이해되기도 한다. 윤이상의 곡 '광주여 영원하라'도 마찬가지이다. 가슴 속 불도장처럼 각인돼 있는 동백림의 상흔은 5.18로 연결, 확장되면서 그들의 예술활동에 커다란 변곡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또한 필자의 예술세계에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봄이 되면 항상 작품군상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천상병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봄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요, 해외에서의 지명도를 획득한 인물도 아닌 그였다. 그저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위해 시 한편 써주며 기인 생활을 했던 이 시인은 도대체 동백림사건과 무슨 상관이었을까? 힘 있는 자들의 횡포는 막걸리 잔 두어 순배의 허허로운 만족조차 용납지 못하고 흉측한 굴레로 박제화시켜 버리고 말았다. 숭숭 빠지고 벌어진 치아 사이로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해맑게 웃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차가운 시선들 앞에 발가벗겨진, 힘없는 자의 두려움도 읽힌다. 그의 사진을 바라본다. 그의 웃음은 나를 향해 있고, 나는 불편하지만 그 웃음에 화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나의 편협과 나태를 용서하지 못할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그의 웃음과 닮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시간과 사건을 거치며 변화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세상을 빗대고 조탁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 방식은 현실에의 적극적인 참여의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한 발짝 물러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차곡차곡 구축해 나갈 수도 있다. 문제는 예술가란 모름지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에 앞서 인간과 세상을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캐논처럼 큰 패턴을 잡아 놓으면 악보는 뒤로 갈수록 잔기술로 변형될 뿐 줄기는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삶은 캐논보다는 푸가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네 삶은 찰나이지만 단순하지가 않다. 황재섭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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